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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나라, 손 권 삼국의 건국자, 솔론의 아테네 입법가 이야기

소아시아기저부에서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3대륙이 접히는 아라비아 반도기저부에서 뻗쳐 지중해 흑해 사이에 돌출한 반도. 이 곳에서는 예부터 많은 민족이 흥망하였고, 오늘날은 터어키 공화국령이 되어 있다. 일찌기 많은 인도 유럽계 민족이 거주하였고, 이와 병행하여 BC 앗시리아인의 식민 도시가 동부 에나토올리아에 형성되었다. 그 후 이 땅에는 핫티 왕국이 성립되었으나, 그 쇠약을 틈타 프리지아 왕국이 서부 애나토올리아에 세워지고, 대체로 계속되어 토착 세력인 리디아와 대체되었다. 리디아는 앗시리아의 멸망 후 급격히 발전하였고, 서부 애나토올리아는 물론 인접 지역의 고대 그리이스의 식민 도시를 제압하여 메디아, 칼데아, 이집트 등과 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상업민으로서 활약, 번영하였다. 그러나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키로스 왕은 리디아를 멸하여 그리이스 식민 도시를 제외한 전애나토올리아를 그 판도하에 집어넣었다. 뒤에 이 지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토가 되었고, 그가 죽은 뒤에는 각지에 비티니아, 캄파도키아, 돈투스, 페르가몬 등의 작은 나라들이 독립국이 되었다. 그 후 로마는 셀루우코스 왕조의멸망을 전후하여 파르티아와 싸우는 한편, 애나토올리아의 공략을 계속하여 BC2 ㅇ안 이슬람 후반에 이들 세기의 여러 나라를 병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란에서 흥한 사산조의 서진에 의하여 이 지역을 둘러싼 로마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계속되었으며, 이는 비잔틴 제국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이 동안 이슬람 세력이 커져 근동은 셈족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소아시아도 그 압력을 받았으나, 11세기 후반까지 대체로 애나토울리아는 비잔틴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셀주크투르크, 이어 오스만 투르크 등의 투르크족이 침입하여 드디어 터어키 공화국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손 권은 삼국 중 오의 건국자. 자는 중모. 오군 부춘 사람. 가문이 낮은 무인 집에서 출생. 부친 손 견은 황건의 난에 종군, 원 술에게 협력하여 세력을 굳혔고, 그의 사후 장자인 책이 이어받아 웅지를 펴서 오후가 되었으나 이듬해에 죽고, 권이 대신하여 통사라 칭하였다. 저장 쟝시의 평지부를 영유하고, 산간에 의거한 산월의 귀순과 강남의 미산 확보에 노력하였다. 회수 유역의 호족이나 북방으로부터이주한 군인의추대를 받아 양쯔 강 상류에도 군사를 내었다. 처음에는 조조가 현제를 허에 맞이하여 천자를 업고 군웅에 호령하였는데, 유 비가 형주로부터 패주하자, 이와 합세하여 적벽에서 조조를 격파하고, 건업에 의거하여 석두성을 쌓았다. 우창에서 오왕의 위에 올라 황무라고 개원하였다. 또한 위제 조 비의 봉을 받았으나, 제를 칭하고 황룡으로 개원, 전적으로 독립 체제를 취하였다. 형주 분할 교섭이 원활치 못하여 유 비와 싸웠으나, 촉의 제갈 양은 위를 치기 위하여 오와의 우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역시 대략 이를 시인하였다. 랴오뚱 원정에 실패한 의에 지금의 인도차이나, 타이완, 하이난 성 방면에도 출병하는 등 해상 발전도 꾀하였다. 

솔론은 아테네의 입법가. 그리이스 7 현인의 한 사람. 또한 아테네의 가장 오랜 시인이기도 하다. 명문 출신인 그는 살라미스 섬 영유를 둘러싼 메가라 싸움에서 아테네인을 격려하여 명성을 얻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빈부의 차가 커져서, 부채 때문에 땅을 잃거나 노예로 팔리는 사람이 많아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항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그는 BC 아르콘 및 조정자로 선출되어 위기 타개를 위한 개혁을 실시, 부채 증서를 말소하고, 인신을 저당으로 하는 금전 대부를 금지했으며, 또 도량형을 종래의 아이기나계에서 유비아계로 개혁하였다. 또 정치 제도의 면에서는, 재산을 새로이 평가하여 시민을 펜타코시오메딤노이, 힙페이스, 제우기타이 테테스의 4계급으로 구분하고, 상위의 3계급은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하였으며, 최하급의 테테스에는 민회와 재판에 참여하는 권리를 주었다. 또 옛날부터 전해 오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회의는 그대로 존속시켰지만, 따로전부터 존속해 오던 4부족제에 기초를둔 4백명의 평의회를 신설했다. 입법에 관해서는 살인에 관한것 이외의 모든 드라콘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그 상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것은 이후의 아테네 법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개혁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불만이었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10년간은 법을 개정하지 못하도록 서약을 시키고, 이집트, 키프로스, 소아시아 등으로 여행하였다. 그러나 그가 귀국한 후에도 분쟁이 격화되자, 얼마 후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가 되었다. 그는 끝까지 이에 반대하다가 죽었다. 사회 문제에 대하여 쓴 몇 가지 시편이 전해지고 있다.